<대한민국 미혼모 보고서> ⑥ 기업들도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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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리아의집 작성일2010-07-16 12:53 조회24,08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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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채용박람회 '내 직장은 어디에''2009 서울 남부권역 여성채용박람회'에서 여성구직자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피고 있다. <자료사진> |
"사장님께서 미혼모 싫어해요"..쫓겨나기 일쑤
가장 심한 편견과 차별은 '직장 구할 때' 겪어
재벌기업들 "미혼모 도우면 이미지에 역효과?"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뱃속의 아이를 빨리 지우거나 아니면 당장 회사를 그만두세요."
지난해 3월 미혼인 이수진(23.가명) 씨가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리자 작업반장으로부터 돌아온 말이다.
상고를 졸업하고 대기업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라인에서 2년 넘게 품질검사 일을 하던 이씨는 앞이 캄캄했다.
그녀가 더욱 기겁을 한 것은 "사장님께서는 미혼모를 무지 싫어하신다"는 작업반장의 짜증 섞인 설명을 듣고서다.
경력도 살리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임신 4~5개월까진 계속 일을 하겠다는 이씨의 소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회사의 강요에 못 이겨 2주 뒤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나왔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결혼한 직원들은 출산휴가도 쓰고 육아휴직도 하던데 나는 '일하다 뱃속의 아이가 잘못돼도 회사는 책임 없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쓰라는 말까지 들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 미혼모 재취업 '하늘의 별 따기'
이씨는 출산 이후 현재까지 6개월여 동안 직장을 구하고 있지만, 허탕만 치고 있다.
전산 및 회계 관련 자격증을 서너 개 가지고 있지만, 가뜩이나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미혼모라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채용 담당자의 표정은 달라진다.
이씨는 "면접을 할 때 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데 일은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나온다"고 말했다.
여성취업박람회에서 여성들이 구인 게시판을 보고 있다. <자료사진> |
그녀는 "그때마다 '아무 문제 없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대답하지만 나를 써주는 곳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받아 아이와 살아왔는데 최근엔 집안 사정도 갑자기 나빠져 어머니도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하는 형편"이라며 "빨리 일자리를 구해 자립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크다"고 한숨지었다.
혼자서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하면서 직장으로부터 퇴직을 강요받거나 유무형의 차별을 받는 것은 비단 이씨만이 아니다.
◇ "아이 때문에 업무에 지장 있겠네요..."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 아이를 직접 키우는 미혼모의 32.9%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가장 심하게 느끼는 순간으로 '취업할 때'를 꼽았다.
이웃관계에서(17.4%)나 가족관계에서(11.2%), 혹은 결혼할 때(11.2%) 보다도 직장을 구할 때 가장 심한 편견과 차별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기업이란 조직은 다른 조직과는 달리 사회적 편견이 너무 강해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채용 자체를 꺼리는 사례가 많다.
네 살 된 아들을 홀로 키우며 중학교 인턴교사로 일하는 유지선(29) 씨는 "학교에서 면접을 볼 때마다 항상 남편 직업을 묻는데, 미혼모라고 답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며 "면접까지 올라가면 거의 합격인데 나는 대부분 다 떨어졌다"고 말했다.
유씨는 현재 일주일에 4일은 인턴교사로 일하며 저녁마다 과외를 하고, 주말이면 토익이나 텝스 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번 달이면 인턴교사 계약기간이 끝나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지만 또다시 면접 볼 생각을 하면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네 살 된 딸과 함께 사는 김연정(32) 씨는 "출산 후 일자리를 구할 때마다 '미혼모냐'며 대놓고 물어보진 않지만, 등본을 보면서 '엄마와 아이만 있네요'라며 아이 때문에 일에 지장이 있어 안된다는 식으로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혜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다수 미혼모가 아이와 함께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고 당당하게 살길 원하고 있지만, 노동시장 진입부터 차별당하고 있어 쉽게 자립기반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기업 '교묘한 차별'에 미혼모들 '눈물'
기업들이 미혼모라는 이유만으로 드러나게 차별하는 것은 아니다.
이수진 씨 경우처럼 기업으로부터 노골적인 차별 대우를 경험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오히려 적다.
입사서류도 꼼꼼하게..두 여성 구직자가 입사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자료사진> |
한국미혼모협회 정선옥 사무국장은 "요즘 대부분 기업은 어느 정도는 상식적이고 어리석지 않다"며 "소송에 휘말릴 정도로 문제를 일으키고 차별하는 곳은 드물다. 대부분 교묘하게 차별이 이뤄지며 미혼모 스스로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유림(34.가명) 씨는 "팀장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결혼하지 않고 임신했다는 소문이 나자 미니홈피 방문객 수가 급증하고, 뒤에서 '아기 아빠가 누구래'라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많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결혼 안 하고 임신한 사람에게 출산휴가 줄 수 있느냐'는 말이 나오고 '직원들 보기에 그렇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그녀는 "회사에서 내가 마치 투명인간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임산부 대우를 안 해주더라. 임신 축하한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것도 일종의 차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미혼모들도 주위의 편견으로 말미암은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최미연(34.가명) 씨는 미용기술을 인정받아 좋은 조건으로 미용실에 스카우트됐지만, 미혼모라는 사실을 안 동료 직원들의 횡포로 5일 만에 눈물을 삼키며 제 발로 걸어나와야 했다.
"나흘째 되는 날 사람들에게 인격적인 모독을 당해 더는 일할 수 없었다"는 최씨는 "그때 충격이 컸다.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에 산에 들어가 한 달 동안 마음을 추슬렀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최씨는 "미용실을 인수해 운영해보기도 했지만, 어느 날 미혼모라는 사실이 동네에 알려지자 손님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매출이 곤두박질 쳐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고 말했다.
◇ 미혼모 지원하는 재벌기업 거의 없어
대기업에서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장이나 임원들은 여직원 중에 미혼모가 있다고 하면 질색을 한다.
몇몇 재벌기업 홍보실에 전화를 걸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미혼모를 지원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했더니 한결 같이 "미혼모는 지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재벌그룹의 한 홍보실 임원은 "미혼모들을 대상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했다가는 오히려 회사 이미지에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권희정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코디네이터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한 여성을 보면 비난하고 쑥덕거리는 게 지금의 기업 문화"라고 지적했다.
권 코디네이터는 그러나 "미혼 임신도 자기 회사 여직원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출산 후에도 미혼모들이 다니던 회사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기업에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멀고 먼 취업의 발걸음<자료사진> |
◇ 사랑의 손길 내미는 국민은행과 서울시약사회
이와 더불어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 기업들이 홍보의 하나로 미혼모 단체를 지원하고 있지만 대부분 '반짝 관심'과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이나 단체들은 거창한 구호를 내걸거나 거액의 기부금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미혼모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정선옥 사무국장은 "미혼모들이 공부하고 일할 수 있도록 대학생과 국민은행 사내동아리 회원들이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며 "수익을 기부하는 것뿐 아니라 노동력으로 기부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약사회도 지난달 미혼모를 약국의 전산원으로 취업할 수 있게 하겠다는 업무 협약을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와 맺었다.
김정란 서울시약사회 사회참여이사는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벗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일할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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